본관은 청주(淸州). 경대승(慶大升)의 5대손이며, 아버지는 시중 경복흥(慶復興)이다. 아들은 경습이다.
1377년(우왕 3) 4월 밀직부사로서 서경도순문사 겸 서북면부원수(西京都巡問使兼西北面副元帥)가 되었다. 1379년 4월 동지밀직으로 양광경상전라조전원수가 되어 왜구 토벌에 참여하여, 다음 달 진주에서 활약하였다. 1388년 4월 좌군도통사(左軍都統使) 조민수(曺敏修) 휘하에서 계림원수(鷄林元帥)로서 요동정벌에 출정하기도 하였다.
위화도회군 뒤 이성계(李成桂)의 집권과정에서 일시 소외되었으나, 1390년(공양왕 2) 4월 전원주등처병마절제사(前原州等處兵馬節制使)로서 무진회군공신(戊辰回軍功臣)에 녹훈되었다.
1392년(태조 1) 6월 문하평리(門下評理)로서 남경(南京)에 가서 성절(聖節)을 축하하였으며, 1393년 7월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로서 회군2등공신(回軍二等功臣)에 녹훈되고, 같은 해 12월 하정사로서 요동에 이르렀으나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왔다. 다음해에도 요동에서 명의 저지로 들어가지 못하였다.
그 뒤 외직으로 나아가 서북면병마도절제사(西北面兵馬都節制使)로 평양윤(平壤尹)을 겸하였다. 시호는 순절(順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