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아버지는 정당문학(政堂文學) 강군보(姜君寶)이고, 어머니는 전객시령(典客寺令) 여진(呂珍)의 딸이다. 아들 강회계(姜淮季)는 공양왕의 부마가 되었다.
1357년(공민왕 6) 성균시에 급제하였다. 1362년 대관서승(大官署丞)이 되고, 이후 전공좌랑(典工佐郞) · 합문인진부사(閤門引進副使)를 거쳐, 전법(典法) · 전리(典理)의 총랑(摠郞)을 역임하였다. 이어 삼사좌윤(三司左尹) · 군기판관 · (軍器判官)을 역임한 뒤 1378년(우왕 4)에는 강릉도안찰사(江陵道按察使)로 나갔다.
1379년 선공판관(繕工判官)을 거쳐, 이듬해 안동대도호부사로 나아가고, 1382년에는 밀직부사(密直副使)가 되었으며, 단성보리공신(端誠輔理功臣)의 훈호를 받고 판후덕부사 겸판전의시사 상호군(判厚德府事兼判典醫寺事上護軍)에 제수되었다. 이듬해 문하평리상의(門下評理商議)가 되었으며, 진산군(晉山君)에 봉하여졌다.
1390년(공양왕 2)에 추충보조공신(推忠輔祚功臣)의 훈호를 받고 찬성사에 올랐으며, 청성군(菁城君)에 봉해졌다. 1392년 조선이 건국될 당시 태조 즉위년에 유사(有司)의 상언(上言)으로 고려의 대신 이색(李穡) 등 56인을 숙청하였는데, 이을진(李乙珍) 등과 함께 직첩을 회수당하고 멀리 유배되었다.
뒤에 풀려나와 정종 때 상의문하찬성사(商議門下贊成事)를 지냈다. 시호는 공목(恭穆)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