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계숙(啓叔), 호는 기재(耆齋). 아버지는 진사 강설(姜渫)이며, 어머니는 여대로(呂大老)의 딸이다.
1654년(효종 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사간원정언 · 사헌부장령을 거쳐 판결사를 지냈다. 함경도 종성부사로 있을 때 임금이 직언을 요청하자, 시폐(時弊) 수천언을 문장으로 진언하였다.
청렴결백하여 물품을 주고받을 때에는 반드시 의(義)로 하였으며 봉급에 남는 것이 있으면 친척에게 나누어주었다. 종성부사의 임기를 끝내고 돌아올 때의 소지품은 침구(寢具)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을 만큼 청렴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