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논산출생.
미국 감리교계통의 학교인 영명학교(永明學校)를 졸업한 뒤 미국인 선교사였던 교장 윌리엄스(Williams, E. C.)와 일본 대판(大阪)에서 활동하고 있던 선교사 겸 건축가 보리스(Vories, W. M.)와의 인연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보리스가 활동하던 주무대는 대판이었으므로 그는 보리스의 설계사무실에 나가며, 1923년 가까운 곳에 있는 간사이공학전수학교(關西工學專修學校: 지금의 大阪工業大學)에 입학, 건축수업을 하였다. 이 무렵에는 그와 비슷한 연배의 한국인 건축가 임덕수(林德洙)도 사무소에서 함께 근무하였다.
그는 학교·교회·YMCA·병원 등 기독교(감리교)의 선교목적을 위한 건축물을 위주로 한 일본과 한국에 설계되고 있는 보리스의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하다가, 1938년 보리스가 서울에 경성주재사무소(京城駐在事務所)를 개소하게 되자 주재원으로 파견되었다.
귀국한 뒤 이화여자전문학교 건물군, 회현동 감리교회(남산교회당) 등을 설계하였으며, 그뒤 계속 ‘보리스건축’의 실현에 진력했다. 대표작으로는 태화기독교사회관(1939)을 들 수 있는데, 이 건물은 3·1운동의 장소로서 한·양절충식의 표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광복 후 대한기독교서회빌딩에 설계사무소를 차리고 그곳을 중심으로 대한건축학회 초창기 회원들이 모임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