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남도 함흥(咸興) 출생. 1937년경성고등공업학교(京城高等工業學校) 건축과를 졸업하고, 당시 조선총독부 관방회계과에 들어가 박길룡(朴吉龍)·이용재 밑에서 4년여 일을 배웠다.
그 뒤 도쿄건물 경성지점에 있으면서 황해도 재령의 명신중학교(明信中學校), 서울 명동의 백정빌딩 등의 설계에 참여하였으며, 해방이 되자 미군정청 건축서(建築署) 설계과장이 되어 혼란기의 건축 사무를 처리하였다.
1950년 6·25가 일어나자 부산으로 피란을 갔다가 이균상(李均相)을 만나 그의 추천으로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축과 교수가 되었다. 1956년 한미교육원조금으로 미국 미네소타대학교 대학원에 유학가 건축의장(建築意匠) 및 서양건축사를 공부하고 돌아왔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의 건축계는 큰 변혁기를 맞게 되었는데, 그의 활동도 이 때가 절정기였다. 설계사무소 경영, 대학 건축교육의 본격적인 추진, 건축유관단체 참여가 폭넓게 이루어졌으며, 한국건축가협회와 대한건축학회의 회장도 그즈음 거쳤다.
그의 작품으로는 경기도청사(경기도 수원시, 1963년, 나상진 합작), 한국정신문화연구원(경기도 성남시, 1978년, 안장원 합작) 등이 있다. 정년퇴직 후에는 계속 건축학과 명예교수로 있으면서 건축연구소를 자영하였다. 별세 후 충청남도 천안시풍산공원 묘지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