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임보(任甫), 호는 도촌(道村). 강온(姜溫)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강사필(姜士弼)이고, 아버지는 승지 강정(姜綎)이며, 어머니는 정응규(鄭應奎)의 딸이다. 장현광(張顯光)의 문인이다.
1603년(선조 36)에 생원진사시를 거쳐, 1606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등용되었으며, 병조좌랑 · 통례(通禮) 등을 지냈다. 광해군 때 주서(注書)를 지냈으며, 이어 세자시강원정언 · 세자시강원문학 등을 거쳐 장령 · 필선을 차례로 지냈다.
관직에 있으면서 정치수완이 뛰어나 많은 공적을 쌓았다. 1623년 인조반정 이후 문사랑(問事郎)으로서 정치적 물의를 일으키던 대북파의 죄상을 다스렸다. 승문원판교를 지낸 뒤 회답부사(回答副使)로 일본에 다녀온 뒤 승진되어 군자감정에 올랐다.
이때 일본의 화포술(火砲術)을 전하여 군에 실용하도록 하였다. 그뒤 강원도관찰사 · 연안부사 · 도총부총관을 지냈다. 강원감사로 있을 때 1633년(인조 11) 후금의 침입에 대비하여 영병(營兵)에 대한 조총의 공급, 화약의 지급 등을 주청하여 실행하였고, 포수의 훈련 등에 열중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
또한 공평한 세의 부과에도 최선을 다했다. 1635년에는 명나라 도독의 협판사가 되어 활약하면서 명나라의 사정과 후금의 동정을 조정에 보고하였다. 청송부사(靑松府使) · 동지의금부사 등을 거쳐 성천부사(成川府使)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