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퇴부(退夫), 호는 삼휴자(三休子) · 석촌(石村) · 칠송(七松). 경세청(慶世淸)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경혼(慶渾)이고, 아버지는 경시성(慶時成)이며, 어머니는 박난영(朴蘭榮)의 딸이다.
1590년(선조 2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594년 홍문관정자를 제수받았고, 1598년 진주사(陳奏使)의 정사(正使)인 최천건(崔天健)을 따라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뒤 사헌부의 지평 · 장령과 사간원헌납 등을 역임하였다. 1601년 남원부사가 되었다.
1607년 홍문관교리로서 통신사 여우길(呂祐吉)과 함께 통신부사가 되어 임진왜란 후 첫번째 사절로 일본에 건너가 국교를 다시 열게 하고 임진왜란 때의 포로 1,340명을 데리고 돌아왔다. 1618년(광해군 10) 호조참판이 되고, 이듬해 장례원행판결사(掌隷院行判決事)가 되었다. 학문이 뛰어나 삼사의 요직을 두루 거치고 부제학과 호조참판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