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숙흠(叔欽). 아버지는 사과(司果) 기대유(奇大有)이다.
어려서 예문(藝文)을 배우고 서법에 능했으나 성격이 호방하여 무과를 택하였다. 1579년(선조 12) 무과에 급제하고 선전관(宣傳官)이 되었다.
당시 오랫동안 평화가 계속되자 무비가 소홀하였으므로 왕의 명을 받들어 주와 군의 군비를 두루 점검하였다. 1590년 남해현령(南海縣令)으로 부임하여 전선[戰艦]과 병기를 수리하였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우도수군절도사 원균(元均)의 휘하에서 여러 차례 해전에 참가하였다.
그때마다 선봉이 되어 큰 공을 세웠으므로 통정대부가 되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병으로 현령을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적병을 만나 어머니와 함께 바다에 몸을 던져 자살하였다. 1604년 선무공신(宣武功臣) 3등에 추록되고 개백군(皆伯君)에 추봉되고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