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사중(士重), 호는 석계(石溪). 생육신인 권절(權節)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권윤희(權胤禧)이고, 아버지는 권결(權潔)이며, 어머니는 김사근(金思謹)의 딸이다. 아들이 예조 참판 권우(權堣)다.
1603년(선조 36)에 진사가 되고, 1611년(광해군 3)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등용되었으나 이이첨(李爾瞻)에 의해 기각당하였다.
이위경(李偉卿) 등이 인목대비(仁穆大妃)를 폐위시키려고 폐모론을 제기하자 사관(四館: 성균관·예문관·교서관·승문원)에 문서를 돌려 그들의 과거응시권을 정지하게 하였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중상모략을 받고 관직을 박탈당하였다. 뒤에 승문원에 복직되었다.
이이첨의 아들 이홍엽(李弘燁)이 대리시험으로 과거에 급제하자 이 사실을 폭로하여 또 삭직되었다. 그 뒤 곧 복직되었으나 1618년 폐모론이 일어나 이이첨 등이 백관을 위협, 궁궐에 들어가 정청(庭請)을 하였을 때 참여하지 않았다 하여 전적으로 전직되었다가, 그 뒤 후금과의 미묘한 관계로 평안도가 소란할 때에 평안도독운사(平安道督運使)의 종사관이 되어 나갔다.
고향에 돌아가 있다가 1623년 인조반정으로 정언이 되어 바른말을 잘하였다. 1625년(인조 3) 사간이 되고 이듬해 집의를 거쳐 길주목사가 되었다. 1629년에 승지·호조참의 및 해주·여주의 목사를 지냈다. 1632년에 좌부승지를 거쳐 이듬해 동부승지가 되었다가, 1636년 벼슬에서 물러나 아산의 농장에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