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사성(思省), 호는 석당(石塘). 할아버지는 전생서봉사(典牲署奉事) 권진(權振)이고,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권상(權常)이며, 어머니는 나운걸(羅云傑)의 딸이다. 이관(李琯)의 문인이다.
1577년(선조 10)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전적·사예·승문원·춘추관 등의 벼슬을 거쳐 『명종실록(明宗實錄)』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1589년 각 도에 괴질이 발생하자 함경도에 파견되어 백성들을 돌보고 제사를 올렸다. 임진왜란 때에는 장령으로서 서울을 굳게 지킬 것을 주장하였다. 1596년에 교리·시강관을 거쳐 이듬해 응교로 있을 때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고급사(告急使)로 명나라에 가서 사태의 시급함을 알리고 원병을 청하였다.
이때, 명나라 병부시랑 이정(李楨)이 우리나라의 지세를 알고자 하므로, 산천의 형세와 원근을 도면에 그려가며 설명하는 데 막힘이 없었으며, 이로 인해 보병과 수군을 얻고 군량을 조달하게 하였다. 돌아와서 예조참판·호조참판이 되었으며, 황해도관찰사로 나아갔다.
1604년 대사헌이 되었고, 특명을 받아 선무공신(宣武功臣) 3등으로 봉해지고, 이듬해 길창군(吉昌君)에 봉해졌으며 전라도감사가 되었다. 1607년 예조판서를 거쳐 1609년 종묘영건을 감수한 공으로 정헌대부가 되었으나, 광해군 때에 홍문관의 탄핵을 받아 관직을 버리고 두문불출하였다. 시호는 충정(忠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