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잠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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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제도
1767년(영조 43), 영조의 친경례(親耕禮)와 정순왕후의 친잠례(親蠶禮)를 기념하여 시행한 과거 시험.
제도/법령·제도
시행 시기
1767년(영조 43)
내용 요약

경잠과는 1767년(영조 43), 영조의 친경례(親耕禮)와 정순왕후의 친잠례(親蠶禮)를 기념하여 시행한 과거 시험이다. 경잠과는 1767년에 단 한 번 실시되었다. 1767년 3월 11일에 시행하여 문과에서는 김문순(金文淳) 등 3명, 무과에서는 강복린(姜福麟) 등 264명을 뽑았다.

목차
정의
1767년(영조 43), 영조의 친경례(親耕禮)와 정순왕후의 친잠례(親蠶禮)를 기념하여 시행한 과거 시험.
내용

영조 대에는 기존에 있던 제도 가운데 한동안 시행하지 않은 국가 의례를 복구하여 시행하는 일이 잦았다. 그중 하나가 1767년(영조 43년)에 실시한 친경례(親耕禮)친잠례(親蠶禮)이다. 친경은 왕이 몸소 농사를 짓는 모범을 보이는 국가 의례이며, 친잠은 왕비가 직접 누에치기의 모범을 보이는 국가 의례이다.

영조가 주1에서 친경례를 거행하는 한편 정순왕후는 경복궁에서 친잠례를 거행하여 친잠례를 복구하였다. 영조는 이전에도 친경례를 행한 적이 있지만 왕비가 친잠례를 거행한 것은 1620년(광해군 12년) 이후 처음이었다.

1767년 2월 26일에 친경례를 거행하고, 3월 10일에 친잠례를 거행한 뒤에 두 행사를 함께 기념하여 3월 11일에 정시(庭試) 문무과를 시행하였다. 영조는 특별히 이 시험에 ‘경잠과(耕蠶科)’라는 이름을 붙였다.

친경과 친잠 행사가 끝난 뒤 왕이 참석한 가운데 행차에 참여한 유생과 병사들을 상대로 시험을 시행하였다. 문과는 경희궁 숭정문에서 시행하여 김문순(金文淳) 등 3명을 뽑았고, 무과는 경희궁 건명문과 모화관에서 나누어 시행하여 강복린(姜福麟) 등 264명을 뽑았다. 3월 15일에 경희궁 주2에서 합격증서인 홍패어사화 등을 나누어 주는 방방례(放榜禮)를 거행하였다.

참고문헌

원전

『국조방목(國朝榜目)』
『무과총요(武科總要)』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영조실록(英祖實錄)』

인터넷 자료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http://people.aks.ac.kr)
주석
주1

고려ㆍ조선 시대에, 신농씨(神農氏)와 후직씨(后稷氏)에게 풍년이 들기를 빌던 제단. 서울 동대문 밖에 있었다.    우리말샘

주2

조선 시대에, 경희궁 안에 있던 정전(正殿). 임금이 신하로부터 조하(朝賀)를 받던 곳이다. 1926년 지금의 동국대학교 자리로 옮겼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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