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건연대는 미상이나 고려시대 때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신라 신문왕 2년(682) 국학(國學)이 설치되었던 곳이라 한다.
그 뒤 1492년(성종 23) 경주부윤 최응현(崔應賢)이 중수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대성전이 소실되어 위패를 도덕산(道德山) 두덕암(斗德庵)으로 옮겼다가 1600년(선조 33) 경주 부윤 이시발(李時發)이 대성전과 전사청을 중건하고 위패를 환안(還安)하였다.
1614년(광해군 6) 부윤 이안눌(李安訥)이 명륜당을 중수하고 동서 양무(兩廡)를 중건하였으며, 1668년(현종 9)에 보수하였다. 1985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으며,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 · 명륜당 · 동무 · 서무 · 전사청 · 내신문(內神門) 등이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2현(宋朝二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전답과 노비 · 전적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현재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 ·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고 초하루 ·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으며,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