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3년(태종 3)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유학교육 및 지방민의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597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 중건하였다. 1984년 전라북도 문화재자료(현,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으며,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 · 명륜당 · 양사재 · 동재(東齋) · 서재(西齋) · 사마재(司馬齋) · 전직사(典直舍) · 내삼문(內三門) 등이 있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대성전에는 5성(五聖), 10철(十哲), 송조 6현(宋朝六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동재 · 서재는 각각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이며,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에 처마는 홑처마로 되어 있으며,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전답과 노비 · 전적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 ·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고 초하루 · 보름에 분향을 올리고 있으며, 전교(典校) 1명, 장의 수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소장 전적은 71종 128책으로, 지방사연구에 참고가 된다. 일제식민지시기 향교 부지 일부가 소학교(현 고부초등학교)로 편입되고, 1914년 정읍군으로 합군된 뒤로는 중설위(中設位) 향교로 약화되었다. 성균관 명륜당 은행나무, 광주향교의 은행나무와 함께 고부향교의 은행나무는 3대 명물로 지칭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