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3년(선조 16) 지방유림이 김굉필(金宏弼)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금성산 아래(현재 금성시 경현동)에 사당을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 뒤 1589년(선조 22) 나덕준(羅德峻) · 나덕윤(羅德潤) 등의 발의로 정여창(鄭汝昌) · 조광조(趙光祖) · 이언적(李彦迪) · 이황(李滉) 등 4위를 함께 배향하여 오현서원(五賢書院)이 되었다.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8년(광해군 원년)에 당시 목사로 와 있던 목장흠(睦長欽)과 지방유림들이 합력하여 중건하였으며, 이듬해인 1609년(광해군 1)에 김선(金璇) 등의 상소로 ‘경현(景賢)’이라고 사액(賜額)되었다.
그 뒤 1693년(숙종 19)에는 기대승(奇大升)과 김성일(金誠一)을 추가배향하여 모두 7위를 모시게 되었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가, 1977년 전라남도 유림이 이 곳에 복원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祠宇), 신문(神門), 동 · 서 협문(挾門), 4칸의 강당, 외삼문(外三門), 4칸의 고사(庫舍) 등이 있다. 사우에는 김굉필 · 정여창 · 조광조 · 이언적 · 이황 · 기대승 · 김성일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강당은 중앙에 마루가 있고 양쪽에 협실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제관들의 숙소로 사용되고 있다. 매년 음력 3월 7일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은 4변(籩) 4두(豆), 재산으로는 전답 2,334평과 임야 1,100평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