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5년(영조 1) 지방유림의 공의로 이건명(李健命)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가 1883년에 중건되었다.
그 뒤 1908년에 정난파(鄭蘭坡) · 문약연(文躍淵) · 노주관(魯周觀) · 이인기(李隣杞), 1910년에 명중화(明重華) · 정재건(鄭在健) · 오도사(吳都事) · 정동후(鄭東後) · 이의천(李倚天)을 추가배향하고 덕양서원(德陽書院)이라고 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각 3칸의 사우(祠宇)와 강당인 숭양당(崇陽堂), 신문(神門) · 고사(雇舍) · 정문(正門) 및 경종이 하사한 비각(碑閣) 등이 있다.
사우에는 이건명을 주벽(主壁)으로 하여 동쪽에 5명, 서쪽에 4명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강당은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의 토론장소로 사용되었다.
이 서원은 1984년 전라남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으며, 매년 음력 8월 19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제품(祭品)은 4변(籩) 4두(豆)이며, 재산으로는 전답 2,000여 평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