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진무성의 본관은 여양(驪陽). 호는 송계(松溪)이다. 인해(仁海)의 아들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의 휘하에 들어가 옥포와 당포 해전 등에서 뛰어난 공을 세웠고 1593년 6월 제2차 진주성 싸움에도 참전했다.
1599년 무과에 급제하고 1605년 선무원종공신에 책록되었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중군으로 통제사의 직무를 대행하기도 하였으며 구성(龜城) 부사(府使)를 지냈다. 호조판서 겸 오위도총부도총관에 추증되었다.
원래는 1826년(순조 26)에 고흥군(당시 흥양현) 대서면 상남마을에 ‘용강사(龍岡祠)’란 이름으로 창건하여 진무성과 함께 창원박씨 3인을 배향하였다. 1868년(고종 5) 헐린 뒤 1882년(고종 19) 현 위치에 다시 지으면서 무열사라 하여 진무성을 모셨다.
1941년과 1971년에 고쳤다. 앞면 3칸의 맞배집 사당, 앞면 4칸의 팔작집 강당, 그리고 내삼문과 외삼문이 있다. 사당에는 영정이 모셔져 있다. 임란해전에서 사용한 것으로 전하는 칠성검(七星劒)과 고문서 다수가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