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5칸, 측면 2칸. 이 곳은 동헌(東軒)으로 사용되던 곳이었으나 1457년(세조 3) 왕위를 찬탈당하고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청령포(淸泠浦)에 유배된 단종이 이해 발생한 홍수를 피하여 일시 거처하였던 곳이다.
또한 이해에 세조가 단종복위운동을 구실로 금부도사 왕방연(王邦衍)으로 하여금 사약을 내리게 하여 단종은 이 해 10월 24일 이 곳에서 죽었다. 동헌의 동쪽에는 단종이 시를 읊었다는 자규루(子規樓, 일명 梅笑樓)가 있다. 현재 이 곳은 조계종 보덕사에서 포교당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건물은 팔작맞배붙임집인 정사(正舍)와 정사 좌우의 익사(翼舍) 1동씩으로 모두 3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