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인조·효종대에 걸쳐 지금의 반계리에 살았던 효자인 황무진(黃戊鎭)을 위하여 1652년(효종 3)에 세운 사당이다. 당시 그의 효성은 중국에까지 알려졌으며, 1634년(인조 12) 나라에서 효자정문을 세웠다.
그 뒤 효종은 그에게 벼슬을 내렸으며, 그가 죽자 충효공(忠孝公)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충효사를 세웠다. 일제강점기 말기까지는 지금의 원주시 명륜동 소재의 원주향교(原州鄕校) 안에 있던 것을 후손들이 살고 있는 골무내기[洞水落]마을로 이전하였다.
지금의 사당 옆에는 1968년에 창원황씨(昌原黃氏) 문중에서 세운 호비(虎碑)가 있다. 황무진은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웠으며 강원감사로 있을 때는 20㎞의 거리를 통근하면서 노모를 모셨는데, 통근길에 호랑이가 나타나 집까지 그를 태워다 주었으며, 노모를 위하여 잉어를 구하려고 엄동설한에 빙판을 치자 잉어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는 설화가 전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