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 1책. 목활자본. 1851년(철종 2)에 처음 간행되고, 그 뒤 1941년 10세손 태식(泰植) 등에 의하여 중간되었다. 권두에 하겸진(河謙鎭)의 중간서(重刊序)가 있고, 권말에 유치명(柳致明)의 구간서(舊刊序), 유치호(柳致皜)의 구간발(舊刊跋), 장석영(張錫英)과 10세손 태식의 중간발문 등이 있다. 성균관대학교 도서관과 연세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1은 부 1편, 시 13수, 소(疏) 1편, 서(書) 6편, 잡저 2편, 제문 3편, 고문(告文) 1편, 권2는 부록으로 지구신장(知舊贐章)·지구왕복서(知舊往復書)·만사·제문·묘갈명·묘지명·병자창의록(丙子倡義錄)·제의려성책후(題義旅成冊後)·정본읍장(呈本邑狀)·정순영장(呈巡營狀)·척록(摭錄) 등으로 되어 있다.
소 1편은 「응지진언소(應旨進言疏)」로 1652년(효종 3) 왕명으로 지어올린 것이다. 내용은 수군덕(修君德)·보민암(保民嵒)·진군자퇴소인(進君子退小人)·입삼공(立三公)·종간여류(從諫如流)·육경구임책성(六卿久任責成)·방백연수구임책성(方伯連帥久任責成) 등 7개항에 걸쳐 군학(君學)과 시무(時務)에 관하여 말한 것으로, 인재 발굴과 인격 중시를 강조하고 있다.
서(書)는 병자호란 때 의령(宜寧)의 의병장으로 청나라와의 화의(和議)가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내용으로 호소사(號召使)에게 보낸 편지가 실려 있다. 두 아들에게 준 「유이자서(遺二子書)」는 1640년(인조 18) 자녀들에게 노비와 전답을 분급한 글인데, 당시 상속제도 연구에 참고자료가 된다.
잡저의 「묘상유찬(猫相乳贊)」과 「계불명설(鷄不鳴說)」은 모두 문학적 수상(隨想)이다. 부록 중 「병자창의록」에는 병자호란 때 경상도 9개 읍에서 일어난 의병수와 의병장의 명단이 수록되어 있다. 병장은 의령의 이만승, 고령의 이현룡(李見龍), 영일의 정영준(鄭英俊), 하양 채임(蔡栠), 청하 이간(李旰), 경산 어용해(魚湧海), 신녕 조한필(曺漢弼), 장기의 이성장(李成樟), 단성 윤승(尹昇) 등으로 되어 있다. 병자호란의 전사 연구에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