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 말기(17세기 중기)에 이르러 조정의 인쇄업무가 훈련도감에서 다시 교서관으로 돌아오자 훈련도감에서 활자 만들기·판 짜기·인쇄법을 경험한 장인들이 교서관으로 옮겨 인쇄업무에 종사하였다.
1648년(인조 26) 8월 이시방(李時昉)에게 반사한 목활자본인 ≪찬도호주주례 纂圖互註周禮≫의 발문에 의해 그 사실이 입증된다. 이 무렵부터 1668년(현종 9)에 사주갑인자(四鑄甲寅字)인 무신자(戊申字)가 주조되어 중앙관서의 금속활자 인쇄업무가 다시 부활되기까지 쓰인 나무활자를 총칭하여 일컫는다.
이 활자의 글자체는 을해자체와 비슷한 필서체에서 행서체에 미치고 있으며, 제작이 조잡한 편이다. 그 인본은 1656년(효종 7)의 ≪증보만병회춘 增補萬病回春≫을 비롯한 1657년 간행의 ≪정유식년사마방목 丁酉式年司馬榜目≫, 1658년의 ≪삼대가시전집 三大家詩全集≫ 등이 있다.
종래는 활자를 제작하여 인쇄한 곳을 밝혀내지 못하고, 글자체에 의해 ‘행서체목활자’라 하였다. 이 목활자는 임진왜란으로 중단된 교서관의 인쇄업무를 다시 시작하여 금속활자 인쇄의 부활로 이어준 점에서 인쇄문화사상 의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