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가 동궁으로 있을 때 『자치통감강목속편』을 교정하고 본문의 강자 인쇄에 필요한 활자를 『홍무정운』에 의거 모방하여 글자 획을 크게 만들게 하였다.
이 활자로는 1772년(영조 48)에 임진자로 찍은 『역학계몽요해(易學啓蒙要解)』와 『역학계몽집전(易學啓蒙集箋)』의 어제서문(御製序文)을 먼저 찍어냈고, 이듬해인 1773년에 이 『자치통감강목속편』의 본문 강자를 찍어냈다.
그러나 이 활자는 본시 본문 대자를 찍기 위한 목적으로 홍무정운자를 모방하여 크게 만든 것이기 때문에 ‘방홍무정운대자’, 그 인본은 ‘방홍무정운대자본’이라 하며, ‘임진서문대자’라 부르기도 한다.
나무로 정성껏 만든 단자활자로, 새김이 정교하고, 윗자와 아랫자의 획이 엇물린 곳이 없다. 이 활자는 1797년(정조 23)에 『아송(雅誦)』의 서문을 찍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