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8년(숙종 14)에 인출(印出:인쇄하여 펴냄.)한 호곡(壺谷) 남용익(南龍翼)의 『기아(箕雅)』를 보면, 중간자와 작은자의 해정한 필서체 활자본으로, 초기의 인쇄인 듯 인본이 매우 깨끗하다.
이 책의 자서(自序:지은이가 책머리에 적는 서문)에서 ‘운각활자(芸閣活字)’라 하였고, 또 그의 문집인 『호곡집』에서 ‘운각주자’라 하였을 뿐 누가, 언제, 어떠한 재료로 만들었는지 기록이 전해지고 있지 않아 알 수 없다.
이 활자를 현재 남용익의 자서와 자저(自著)의 문집 기록, 그리고 활자의 글자체에 의해 ‘교서관(운각)주자’, 그 활자로 찍은 책을 ‘교서관(운각)필서체자본’이라 일컫고 있다. 그러나 활자의 재료에 대하여는 목활자설, 금속활자설, 그리고 최근에는 도활자설까지 제기되고 있다.
새로운 자료의 출현을 기다려 정확하게 고증되어야 할 것이지만, 교서관이 만든 일반적 크기의 상용활자이면서도 그 인본들이 숙종조 무렵으로 한정되어 있고, 당시는 목활자와 도활자까지 주자로 일컫기 시작했던 점 등을 고려하면 목활자본에 붙여두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리고 교서관에서 목활자를 만들어 임진왜란으로 중단되었던 인쇄업무를 되찾은 초기(인조 말기∼효종)에 찍어낸 인본과 혼돈하기도 하는데, 같은 교서관 인본이라 하더라도 이때의 목활자본과는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
이 활자의 인본으로는 『기아(箕雅)』 이 외에 『위소주집(韋蘇州集)』·『유유주시집(柳柳州詩集)』·『도정절집(陶靖節集)』·『구문초(歐文抄)』·『유문초(柳文抄)』·『소문초(蘇文抄)』·『율곡선생문집(栗谷先生文集)』 등이 전해지고 있다. →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