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화엄사 화엄석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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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화엄사 화엄석경
구례 화엄사 화엄석경
서예
유물
문화재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화엄사(華嚴寺)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화엄경』석경.
정의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화엄사(華嚴寺)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화엄경』석경.
내용

199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670년(문무왕 10) 의상(義湘)이 화엄사를 중창할 때 왕명으로 3층의 장륙전(丈六殿)을 건설하고 주위에 석각(石刻)의 화엄경을 둘렀다고 『봉성지(鳳城誌)』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석각된 경은 797년에 반야(般若)가 한역(漢譯)한 정원본(貞元本) 40권 『화엄경』이 포함되어 있어, 의상이 만들었다는 것은 시기적으로 100년 이상의 차이가 있으므로 타당성이 없다. 근세 화엄사의 대강백(大講伯)이었던 진진응(陳震應)의 조사에 따르면, 석경은 60권 『화엄경』뿐만 아니라 40권 『화엄경』까지도 모두 포함하고 있다. 더욱이 필적은 조금씩 다르나 서법(書法)이 비슷하여 시대를 두고 점차로 석각한 것 같은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고 하였다.

또한, 그는 이 석경의 제작연대를 장륙전보다 훨씬 후대인 통일신라 말로 추정하면서 그 실증으로, 첫째 80권과 40권 『화엄경』은 의상 때 새겨졌을 수 없다는 점, 둘째 석각의 자체는 거의 해서(楷書)이고 서법으로 보아서는 우군서법(右軍書法)을 쓰고 있는데, 그 자체는 통일신라 말에 최치원(崔致遠)이 쓴 진감국사비(眞鑑國師碑)와 비슷하다는 점, 셋째 화엄결사(華嚴結社)와 각화엄경불사(刻華嚴經佛事)가 최초로 시도된 것은 헌강왕 때의 일인데, 그때 최치원이 원문(願文)을 쓰고 조야(朝野)의 노력으로 40권 『화엄경』 10질을 완성하였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

따라서, 진응은 이 석경이 문무왕 때의 것이 아니라 헌강왕대에서 경순왕대에 이르는 기간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또한, 석경의 돌이 모두 경주에서 가져온 옥석(玉石)이라는 속설에 대해서도 그 돌들이 모두 지리산에서 볼 수 있는 납석(蠟石)이며 원래는 옅은 청색의 것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면서 변색된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현황

임진왜란 때 장륙전을 두르고 있던 이 석경은 산산조각으로 파손되어 일제강점기까지 각황전(覺皇殿)의 둘레에 돌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 말기 각황전의 해체 보수 때에 진응의 노력으로 그 파편들이 일차 정리되어 상자에 분류, 포장되었다.

그러나 6·25 때 분류, 포장되었던 상자가 파손되고 석경 파편이 다시 노천에 퇴적되었으며, 1961년 9월 8일부터 10월 6일까지 29일에 걸쳐 재정리되었다. 현존하는 석경편은 1만4000점에 달하고 있다. 이들은 대중소로 나누어져 163상자로 분류, 정리되었는데, 석경편의 크기는 몇 자에서부터 50자 이상에 달하는 것도 있다.

그 색깔은 회갈색·담홍색·암회색의 세 가지 색조를 띠고 있는데 이러한 변색은 화재시에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석경의 크기는 현존품에 비추어 방전(方塼:네모 반듯한 벽돌)의 크기였음을 추정할 수 있고, 아래위에 홈을 발견할 수 있어 은구(隱具)를 끼워 고정하여 사방 벽에 장엄하였던 것임을 알 수 있다. 때때로 부조(浮彫)된 것과 선각(線刻)된 문양을 볼 수 있는데, 이는 경판화에서 볼 수 있는 화엄변상도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중국에서는 삼무일종(三武一宗)의 법난에 이르러 불경의 소멸을 막기 위해서 석경의 조각이 유행하였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석경이 크게 유행하지 못하였다. 다만, 구례 화엄사 화엄석경 외에 경상북도 경주 내남면 배리에서 수습된 법화석경(法華石經)과 경주 남산 칠불암(七佛庵)에서 출토된 금강석경(金剛石經) 파편 등이 발견되었을 뿐이다.

참고문헌

『봉성지(鳳城誌)』
『조선불교통사』(이능화, 신문관, 1918)
「화엄석경 조사정리 약보」(정명호·신영훈, 『고고미술』62, 한국미술사학회,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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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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