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서(周書)』 백제전(百濟傳)에 의하면 “구태(仇台)가 대방(帶方)지역에 나라를 세웠다. 그리고 백제사람들은 일년에 네 차례 구태묘(仇台廟)에 제사를 지낸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기록은 『수서(隋書)』 동이전(東夷傳) 백제조와 『한원(翰苑)』에도 보인다.
구태는 ‘고이’라고도 발음하므로 백제 제8대 고이왕(古爾王)이 바로 구태라는 설도 있다. 백제 시조 온조(溫祚)를 초기 부락시대의 시조라고 하면, 구태는 그후 건국시대의 태조라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즉, 자음상(字音上)으로 ‘구(仇)’는 ‘ku’이고, ‘고(古)’는 ‘ko’·‘ku’이므로 동음이고, ‘태(台)’는 원음(原音)의 ‘以’, 즉 ‘i’로서 ‘이(爾)’와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구태(仇台)를 ‘구이’로 읽는 데 대하여 이설도 있어서, 부여 계통의 인명이나 관명에 많이 붙는 ‘태(台)’는 ‘치’·‘티’로 읽는 것이 옳다는 설도 있다. → 고이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