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문서(文瑞), 호는 연곡(延谷). 영해(寧海: 지금의 英陽)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권중두(權重斗)이며, 어머니는 재령이씨로 이형환(李亨煥)의 딸이다.
어릴 때부터 재주가 뛰어나 7세에 사륙부(四六賦)를 지었고, 14, 15세에는 사서와 육경을 통하여 학문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과거에 여러 번 응시하였으나 끝내 등과하지 못하였고, 향리에 있으면서 천명설(天命說)과 성리설을 깊이 연구하여 「성지위천명(性之爲天命)」·「성리설변(性理說辨)」 등을 지었는데, 이황(李滉)의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중심으로 하여 그 변화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늦게 후진들을 모아 효제(孝悌)를 가르치고, 풍속의 순화에도 힘썼다. 저서로는 『연곡유집(延谷遺集)』 2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