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책임은 극예술연구회의 창립동인인 함대훈(咸大勳)·김광섭(金珖燮)·조희순(曺喜淳)·이헌구(李軒求) 등 4명이 맡았고, 총 60면 내외로 간행되었다.
본래 극예술연구회는 1930년대에 등장한 우리나라 신극운동의 대표적 단체로 여러 인재를 규합하여 연극의 상업주의를 배격하고, 서구의 근대적 정통연극을 이 나라에 도입, 정착시키려는 의도로 출발하였다.
따라서 그들의 기관지『극예술』도 이들의 실천노선을 펴기 위한 장소를 제공하려는 취지에서 탄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창간사에서 밝힌 “조선에 진정한 극문화(劇文化)를 수립하자.”라는 구호가 이러한 의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창간호는 입센의 기념호로 꾸며졌으며, 제2호는 1934년 12월에, 제4호는 1936년 5월에, 마지막 제5호는 1936년 9월에 각각 발간되었다.
이 잡지에 실린 주요논문 및 기사로는 「조선연극사상의 극연(劇硏)의 지위」(이헌구)·「입센의 예술과 사상」(김광섭)·「신극과 흥행극」(서항석)·「조선연극운동의 20년을 회고함」(윤백남)·「연출법에 대하야」(홍해성)·「극예술연구회의 경과보고」(연구부 편)·「관중시론(觀衆試論)」(김광섭)·「체호프의 앵화원(櫻花園)에 대하야」(함대훈), 「극연의 방송기록」(연구부 편), 「연극시감(演劇時感)」(이헌구), 「조선연극운동에 대한 소론」(이헌구), 「번역극의 생명」(김광섭), 「극연 경리(經理)의 이면사(裏面史)」(서항석) 등이 있다.
이 잡지는 일제의 민족문화운동 탄압정책에 의하여 정간처분을 받아 더 이상 나오지 못하였다. 이 잡지는 동인지 성격의 극단 기관지이며, 동시에 정기적 성격을 띤 연극전문지로서 당시 새로 등장한 신극의 정립을 위해 여러 가지 실천적인 소임도 수행하였다. →극예술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