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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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아그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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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개념
외국 연극을 번역하여 상연하는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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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외국 연극을 번역하여 상연하는 연극.
내용

우리 나라에서 번역극의 시초로는 신파극(新派劇) 초기의 번안극을 들 수 있다. 신파라는 용어 자체부터가 당시의 일본 연극에서 빌려온 것처럼, 1911년 혁신단(革新團)의 첫 신파극 공연을 비롯한 대개의 신파극 연목(演目)들은 거의 일본작품의 번안이었다.

예컨대 <육혈포강도(六穴砲强盜)>(1912)는 <ピストル强盜淸水定吉>, <쌍옥루 雙玉淚>(1913)는 <기지죄 己之罪>, 신파극 중 최대의 인기를 끌었던 <장한몽 長恨夢>(1913)은 <금색야차 金色夜叉>의 번안이며, 혁신단과 쌍벽을 이루었던 극단 문수성(文秀星)의 <불여귀 不如歸>(1912)는 같은 이름의 일본 인기 신파극의 번안이었다.

좁은 뜻으로 통용되어온 번역극은 서구 연극작품을 우리말로 옮긴 것을 뜻하며, 우리 나라 신극이 본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1920년 이후의 것을 말한다. 우리 나라 신극사에서 차지하는 번역극의 비중은 매우 높다. 그 이유는 우리 나라 신극이 서구 근대·현대극을 매개로 하여 근대의식의 정착을 꾀하였고, 새로운 극형식 및 수법을 서구연극에서 본받았기 때문이다.

이 점은 우리 나라뿐만 아니라 비슷한 시기에 중국·일본 등 역사적으로 근대의식이 늦은 동아시아권의 나라들이 함께 받아들인 방식이기도 하다. 1920년대의 대표격 신극단체인 토월회(土月會)의 첫 공연작품이 체호프(Chekhov,A.)의 <곰>, 쇼(Shaw,G.B.)의 <그 남자가 그 여자의 남편에게 어떻게 거짓말을 하였는가> 등으로 근대 사실주의 연극에 바탕을 두고 있는 점을 알 수 있다.

또 톨스토이(Tolstoi,L.)의 원작소설 <부활>의 번역·각색극이 인기를 끌었던 것도 바로 서구근대극에의 지향을 보여주는 현상의 시초라 할 수 있다. 한편 그 무렵에 공연의 기회는 없었으나 현철(玄哲)에 의한 셰익스피어(Shakespeare,W.)의 <햄릿> 완역(1922)은 번역극 초기 성과의 하나이다.

그러나 1920년대의 산발적이고 비체계적인 번역극의 도입이 신극운동의 방법론으로 본격화된 것은 1931년에 극예술연구회가 발족하여 1930년대 한국연극을 주도하면서 부터였다.

그 단체가 창립공연인 고골리(Gogoli,N.)의 <검찰관>을 시작으로 체호프·쇼·그레고리부인(Gregory,Lady)·입센(Ibsen,H.)·오케이시(O’Casey,S.)·톨스토이 등의 근대극작가의 번역극에 압도적인 비중을 둔 사실에서 그들이 서구근대의 사실주의 연극을 소화시키려고 한 강한 목표지향성을 찾아볼 수 있다.

비록 그와 같은 도입과정이 당시 우리 나라 연극이 안고 있던 큰 과제였던 사실주의의 한국적 토착화에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식민지 현실에 대한 강한 저항의식과 지적 근대화라는 두 가지 과제를 연극을 통하여 이룩하려던 시대적 요청에는 적절하게 부합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광복 뒤에도 번역극은 우리 나라 연극의 주류를 이뤘으며, 창작극 진흥의 촉진제 구실과 연극 현대화의 추진력으로 계속 작용하였다. 1945∼1950년까지의 혼란기는 별도로 치더라도 1950년대는 대체로 미국의 전후극이 극계에 새 바람을 일으켰으며, 이때 오닐(O’Neill,E.)·윌리엄즈(Williams,T.)·밀러(Miller,A.)·와일더(Wilder,T.) 등의 대표적인 작품들이 소개되었다.

그 이유로는 미국 문화의 급격한 침투, 1950년대 연극을 주도한 극단 신협(新協)의 미국 브로드웨이연극에 대한 선호, 오화섭(吳華燮)과 같은 유능한 희극 번역가의 출현 등을 들 수 있다. 이 밖에도 신협에 의한 셰익스피어 비극공연은 이 작가에 대한 관객의 흥미를 유발시키는 최초의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를 마무리하는 기념비적 공연으로 오닐의 대표작 ≪밤으로의 긴 여로≫를 들 수 잇다. 미국을 경유한 서구 리얼리즘 연극을 마무리하는 성과였다(1962).

그러나 1960년을 전후해서는 폭 넓은 서구번역극의 도입이 본격화되었는데, 이것은 때마침 일어난 젊은 세대 중심의 동인제(同人制)극단이 나타나면서였다. 1960년, 제작극회(制作劇會)에 의한 영국의 새세대연극 오즈번(Osborne,J.)의 <성난 얼굴로 돌아다보라> 공연에 이어 실험극장(實驗劇場)의 창립공연인 최초의 부조리연극 이오네스코(Ionesco,E.)의 <수업>은 번역극을 통한 새시대의 도래에 대한 선언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1960년대에 창단된 동인제 극단의 공연작품이 주로 번역극이었고, 시대적으로 근대·현대에 국한되지 않을 뿐 아니라 나라별로는 영국·미국·프랑스·독일 등 그 범위를 넓혀간 것 등은 주요한 특색이다.

1963년 초부터 1970년 말까지 당시 거의 유일한 연극 공연장이었고 서울 명동에 자리잡았던 국립극장의 공연 통계에 의하면 총 200편 중 창작극 대 번역극의 비율은 거의 반반이나, 창작극에 치중한 국립극단을 제외한 동인제 극단의 경우 그 비율이 4:6으로 번역극 우세로 나타나 있다.

뿐만 아니라 다른 통계조사에서 1950∼1969년 사이에 공연된 작품 503편 가운데 번역극이 182편, 36%로 나타난 것과 비교할 때, 1960년대의 번역극 치중현상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번역극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지녔던 대학극(大學劇)의 경우, 1945∼1969년 사이에 총 368회 공연 중 258회 즉, 70%가 번역극 공연이라는 또하나의 조사통계를 볼 때 대학극의 번역극 선호도를 짐작할 수 있다.

또다른 통계에 따르면 1920∼1980년간의 공연 번역극 총수는 584편이며 70년대 이후에도 숫자는 줄지 않고 있다. 늘어나는 공연활동에 창작극만으로 대응키 어려운 현실적 사정과 작품 고르기의 용이함, 다시 말해 내용과 수법면에서의 월등한 다양함 그리고 오랫동안 길들여진 관객의 번역극 선호경향 등을 이유로 들 수 있다.

다만 1970년 이후 두드러진 현상은 번역극의 동시대적 섭취성향이다. 이것은 1960년대를 통한 연극계의 지평확대(地平擴大)와 새 극단 출현의 가속화에 따른 젊은 연극인의 지출에 기인한다. 거기에다 1960년대 이후 범세계적으로 기성연극에 대한 대담한 도전과 변혁이 두드러져 그 여파가 1970년대 우리 나라 연극에 영향을 끼치게 된 것도 하나의 원인이다.

따라서 번역극 공연을 통한 실험정신의 앙양, 현실에 대한 비판적 접근의 양상이 두드러졌고, 이것이 우리 나라 연극의 새로운 판도의 형성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1950년대 후반에 시작된 범세계적 연극개혁의 물결은 10년 이상의 시차를 두고서 새 연극의 한국상륙(예컨대 베켓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의 1969년의 성공적인 한국초연)과 동시에 번역극을 매개로 한 대담하고 실험적인 연출작업(예컨대 1970년 전후의 유덕형의 활동)은 한국연극의 동시대적 세계연극에의 참여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임영웅연출의 ≪고도≫는 그 뒤 한국 번역극의 고정 레퍼토리의 하나로 정착했다.

그 연장으로서 번역 아닌 번안극 ≪하멸태자≫(1975, ≪햄릿≫의 독창적인 번안) 같은 화제작이 공연되기도 했는데 연출(안민수)의 방향이 그가 다룬 창작과 연계되어 있었다는데 번역극 도입(광의)의 새 양상을 볼 수 있었다.

한편 1970년대 후반 실험극장에 의한 번역극 특히 ≪에쿠스≫와 ≪아일랜드≫의 공연은 작품의 수준과 더불어 관객 동원에 신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동시에 일부 번역극 공연의 상업화 현상도 지적되었고 작품선정의 무정견(無定見)을 지적받기도 하였다.

1980년대에 들어와서 매우 두드러진 새로운 소극장운동이 번역극선호의 경향을 띠고 있다는 점도 지적해둘 필요가 있다. 그러나 작품선정 무정견 번역극의 한계를 의식하면서 그것을 창조적으로 자가소화하는 노력의 부족, 상업주의에 영합하려드는 경향 등은 이 시기 번역극 수용의 많은 문제점을 노정시켰다.

그러면서도 여기서 주목할 것은 범세계적 연극현실을 반영하는 동시에 번역극을 한국연극의 현실 속에 편입시켜 재해석해보려는 시도이다. 비교적 온건한 임영웅의 ≪고도≫의 일련의 재공연, 그와 반대로 80년대 전반에 있었던 기국서에 의한 과격한 셰이스피어 해체작업,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김정옥의 한국적 정서 주입 시도, 1990년에 이뤄진 이윤택과 오태석의 서양고전의 포스트모던적 한국화 작업 등은 주목의 대상이다.

참고문헌

『동서연극의 비교연구』(여석기, 고려대학교 출판부, 1987)
『한국신극과 서양연극』(신정옥,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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