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건연대는 미상이나 신라시대에 원광(圓光)이 수행하던 사찰이다. 원광은 30세부터 4년 동안 이 절에서 수행하였고, 산신의 권유에 따라 중국에 유학하였다.
귀국한 뒤에도 원광은 이 절에 머물렀는데 뒷날 그의 부도를 이곳에 세웠다 한다. 선덕여왕 때에는 밀본(密本)이 머물렀다고 하나, 그 뒤의 자세한 사적은 전하지 않는다.
이 절은 조선 후기까지 존립하였으나 6ㆍ25때 폐허가 되었던 것을 정효각(鄭曉覺)이 인법당(人法堂)을 중건하고 ‘백련암(白蓮庵)’이라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절터에는 1985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금곡사지원광법사부도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