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관총 금제 허리띠는 경주시 노서동 금관총에서 발견된 금제 허리띠이다.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왕실 최고위층에서 사용한 것으로, 다른 금동이나 은제 허리띠에 비해 장식성이 돋보인다. 요패, 금판 띠꾸미개 40매, 17개의 허리 장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요패에는 17줄이 달려있는데 신라에서 확인된 허리띠 중 가장 많다. 허리 장식 중 가장 긴 것은 54.5㎝로, 3개의 금구슬이 장식되어 있다. 이 허리띠는 화려한 장식이 발전한 신라 고유의 문화를 대표한다. 또한 고구려·백제와의 대외관계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다.
신라고분에서 금제 허리띠는 관, 관모, 귀걸이, 장식대도 등 여러 금제 장신구와 동반 출토되어 금동이나 은제로 만든 허리띠와 달리 왕실급의 최고위층에서 사용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신라 허리띠 중 가장 이른 예는 4세기 전후로 알려진 전(傳) 경북 영주 출토품과 출토지 미상의 금동제 허리띠를 들 수 있다. 전 영주 출토품은 용무늬로 출토지 미상의 허리띠는 당초문으로 각각 투조되었는데 이와 같은 허리띠는 고구려에서도 확인되어 신라 허리띠의 연원을 알게 한다. 특히 용무늬 허리띠는 신라 황남대총 남분 이후부터는 출토 사례가 극히 적어지며, 당초무늬로 투각된 것이 주를 이뤄 점차 용무늬에서 당초무늬로 변화하는 단계를 보여준다.
금관총의 허리띠는 황남대총 북분의 출토품과 유사해 비교된다. 작은 방형의 금제판에 간략화된 인동문이 좌우대칭으로 투조되었고 그 아래 심엽형 장식, 선단교구가 심엽형의 당초문으로 마감된 점에서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관총의 허리띠가 17줄의 요패를 달고 있어 전체적으로 장식성이 배가된 느낌을 준다. 또한 금관총의 띠꾸미개와 똑같은 도안이 백제 웅진시기 왕족무덤인 공주 송산리 4호분에서도 출토되어 5세기 후반 신라와 백제 사이의 교류관계를 나타낸다.
금관총 금제 허리띠는 얇은 금판을 도려내 만든 띠꾸미개 40매와 17개의 허리 장식으로 구성되었다. 양쪽 끝에는 띠를 매기 위해 서로 끼워 맞춘 교구와 선단금구가 달려져 있다. 띠꾸미개는 사각형으로 간략화된 인동문을 좌우로 대칭해 투조하였고 그 아래에는 하트 모양의 심엽형 장식이 거꾸로 매달려 있다. 이곳에는 원형의 연결고리를 이용해 어형금판, 금모자를 쓴 곡옥, 장규형의 금판, 방육각형의 투작금판 등이 매달려있다. 허리띠 장식 중 가장 긴 것은 54.5㎝로 3개의 금구슬이 끝에 장식되어있다. 허리띠 전면에는 금관에서도 볼 수 있는 금제 영락이 달려있어 장식성을 더하였다.
1962년 국보로 지정된 금관총 금제 허리띠는 신라에서 확인된 허리띠 중 가장 많은 요패를 달고 있으며, 금사와 금구슬로 연결한 유형과 타원형 및 방형의 장식판을 경첩 방식으로 연결한 두 가지 유형이 확인된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중국 진대의 조형과 유사한 점을 찾을 수도 있겠으나 변용을 가해 수하식의 화려한 장식이 발전해 신라 고유의 문화를 드러낸 것으로 고구려, 백제와의 대외관계까지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