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꽂이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는데 머리에 꽂는 세 가닥의 꽂이 부분과 그 위의 나팔형 장식판으로 나눠진다. 세 가닥으로 갈린 꽂이 부분은 아래가 뾰족한 형태로 두께가 1.9㎜로 두꺼운 반면 장식판으로 올라오면서 0.3㎜로 얇아 금판을 위로 얇게 펴면서 문양을 새겨 장식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세 개의 꼬리를 가진 제비로 보이는 새가 날개를 펴서 날고 있는 형상이다.
새가 날고 있는 형상의 윗부분의 장식판에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획된다. 상부에는 2개의 8엽 화문이 자리를 잡고 있고 하부에는 반 팔메트문양으로 구성된 당초문으로 서로 마주 보고 있다. 뒤에서 정으로 쳐서 문양을 만드는 타출기법으로 시문되었는데, 화문은 다소 고부조로 그리고 당초문은 이보다 얕은 저부조로 장식되었다. 머리에 꼽는 부분은 가닥이 3부분으로 되어 있어, 동시대 중국의 예와는 다소 다르다. 본래 뒤꽂이는 여성이 머리를 풍성하게 올린 다음 장식하려는 보조 비녀이다. 구이조우[貴州] 평패마장동진묘(平壩馬場東晋墓)에서 꽃봉오리가 장식된 뒤꽂이 2개를 교차하여 꼽은 가채 머리수식이 출토된 바 있다. 중국에서 뒤꽂이는 주로 여성이 착용한 반면 무령왕릉에서는 왕이 착용한 채로 발견되어 주목된다. 이와 관련하여 백제왕은 오라관(烏羅冠)을 쓰고 금으로 장식하고, 6품인 나솔(奈率) 이상은 관에 은으로 장식하였으며, 조배(朝拜) 및 제사 때 관 양쪽에 새 날개를 꽂았다는 기록이 주목된다. 이로 보면 뒤꽂이는 무령왕의 머리에 꼽아서 장식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정수리 부분에 관모를 쓰고 머리 뒷부분에 이를 단단히 고정하기 위하여 세 개의 다리로 변형된 것으로 이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