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비 금제 관식은 무령왕 금제 관식과 마찬가지로 팔메트와 연화문의 조합 모티프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세부 형식에서는 다소 차이를 보인다. 왕의 관식은 비대칭으로 화염문의 형상을 하고 있는 반면, 왕비의 관식은 연화 한 송이가 피어나는 팔메트를 장식한 병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의 팔메트가 완전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다. 또한 전체 관의 부속물이 같지 않아 이 관식이 착장된 관의 모습은 왕과 왕비의 것이 다를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관련하여 왕과 왕비의 관식의 병부(柄部)가 다른 것이 주목된다. 왕 관식의 병부는 안으로 60° 정도 구부러지고 구멍이 있는 반면 왕비의 것은 쭉 뻗어 있고 구멍이 없으며 녹이 슬어 있다.
왕과 왕비의 관식이 연화문과 팔메트의 식물문으로 구성된 것은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고이왕(古爾王) 28년(261)조와 『신당서(新唐書)』 「동이전(東夷傳)」의 백제조에 등장하는 금화, 즉 오라관에 장식된 금꽃을 표현한 것이다. 왕비의 금식에는 왕의 것에는 없는 병이 등장하는데, 이는 인도 산치대탑이나 아마라바티탑에는 몸체가 풍만한 둥근 병에서 여러 가지의 연화가 피어 있는 연화현병(蓮華賢甁)에 그 연원이 있다. 물에서 서식하는 연화를 문양화한 연화문은 물이 가진 속성 즉 생명을 탄생시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연화의 생명 탄생의 개념이 시각적으로 도안화된 연화현병 모티프인데, 무령왕비의 관식은 바로 이 연화현병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된다.
무령왕비의 금제 관식은 왕비가 생전에 사용한 것이나 혹은 아들 성왕에 의해 새로 제작되어 부장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 무령왕비의 금제 관식을 통해 백제에서 왕과 왕비가 모두 금제 관식을 착용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무령왕비의 금제 관식에 표현된 연화화생의 모티프를 통해 무령왕대에 불교가 새롭게 신장된 사실이 파악된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