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의 심설(心說)에 관련된 언급이 『퇴계집(退溪集)』·『율곡집(栗谷集)』·『한주집(寒洲集)』 등에 비치지만 그의 저작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다만 「기권도」를 짓게 된 동기와 내용은 『퇴계집』 권32에 보인다. 『퇴계집』에는 이황의 제자 우성전(禹性傳)이 질문한 내용에 대하여 이황이 답한 내용이 있고, 우성전의 질문 안에 이구의 말이 들어 있다.
이구는 정복심(程復心)의 「태극음양도」에 대하여 “이 그림은 매우 좋은 것이다. 천지가 나누어진 뒤부터는 기(氣)를 근거로 이(理)를 미루어 찾을 수 있을 따름이다. 문왕의 괘사에 건(乾)은 원형이정(元亨利貞)이라 하였으니 먼저 기를 말한 것이다. 공자는 역(易)에 태극이 있다 하였으니 또한 먼저 기를 말한 것이다. 자사는 솔개가 하늘에 날고 고기가 연못에서 뛴다 하였으니 이 또한 기를 먼저 말한 것이다. 만약에 기가 아니면 비록 성인일지라도 이를 설명하기 어려웠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서경덕(徐敬德)의 주기론(主氣論)을 계승한 입장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이구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다른 「기권도」를 만들었다. 그 그림에 대해서도 이구는 “기란 이를 담은 것이요, 이란 기의 신묘함이니 이가 아니면 실체가 서지 못하고 기가 아니면 작용이 생기지 못한다. 이런 까닭에 인(仁)을 드러낸 것은 기(氣)요, 작용을 간직한 것은 이(理)다.”라고 해설을 붙여 기를 중시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