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헌서(湛軒書)』 「외집(外集)」 권1에 수록되어 있다.
홍대용은 1765년(영조 41) 계부(季父) 홍억(洪檍)의 연경사행(燕京使行)에 수행원으로 따라갔고, 그 다음 해에 연경에서 엄성(嚴誠)·반정균(潘廷均)·육비(陸飛) 세 사람을 만나 의형제를 맺었다. 이를 통해 중국에 여러 사람의 지우를 두게 되었다.
이 책에는 육비와 4통, 엄성과 4통, 엄성의 형 엄과(嚴果)와 3통, 엄성의 아들 엄앙(嚴昻)과 2통, 반정균과 4통, 서광정(徐光庭)과 1통, 등문헌(鄧汶軒)과 4통, 손용주(孫蓉洲)와 5통, 조매헌(趙梅軒)과 2통, 주랑재(朱郞齋)와 1통으로 모두 30통이 실려 있다. 경전, 역사, 문예, 서화, 수양, 예속(禮俗), 유불도(儒佛道)의 비교, 주륙(朱陸)의 이동(異同), 육왕(陸王) 비판 등 다양한 내용에 걸쳐 있고, 홍대용의 인품과 교양이 잘 드러나 있다.
『항전척독』은 『담헌서』「외집」 권2와 권3에 실려 있다. 이 책에는 편지 이외에 「건정동필담(乾淨衕筆談)」이란 부제가 붙은 기록이 있는데, 이는 홍대용이 의형제를 맺었던 엄성·반정균·육비 등과 나눈 필담을 정리한 것이다. 여기에는 이들이 처음 만나던 때의 대화를 자세히 적어둔 기록을 비롯해 서로 사귀는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를 적어두었다. 그 속에는 두 나라의 선비들이 서로 뜻을 확인하고 친밀해지는 과정이 드러나 있어, 옛 선비들의 가치 기준과 교제의 범절을 보여주는 생동감 있는 기록이다.
홍대용은 귀국한 뒤에도 편지로 계속 교류하면서 서로의 학문을 격려하고 충고하였다. 그 내용이 절실해 이들의 사귐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필담 자료 가운데 중국의 선비들이 청나라의 문자옥(文字獄) 정책 때문에 사상 탄압을 받고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 등은 당시 사상계의 이면을 알려주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이들이 서로 마음을 터놓고 사귈 수 있었던 기반으로 작용한 유교 문화의 보편성이 표현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