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종이 바탕에 담채. 세로 108㎝, 가로 60㎝. 전라남도 장성군 장성읍 안평리봉산영당(鳳山影堂)에 있다.
변종락은 전라남도 장성 출신으로, 유년 시절 학문을 배워 과거에 뜻을 두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여러 차례 과거에 실패한 후 고향 전라남도 장성읍 안평리에 살며 풍속 교화와 후진 교육에 힘썼다. 한편 동구 앞에 연못을 파고 정자를 만들어 호남 유생들과 더불어 술과 글로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저서로 『기옹유고(碁翁遺稿)』2권 1책을 남겼다.
이 영정은 1852년(철종 3) 그의 나이 61세 때의 초상이다. 조선시대 초상화 중에서도 가장 개성적이고, 주인공의 정취적인 취미 생활을 강조한 지극히 일상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 전면 하단에 커다란 괴목(槐木) 바둑판과 청화 백자(靑華白磁) 술병이 놓여 있다. 주인공은 검은색 복건과 옥색 도포를 입은 채 공수(拱手 : 두 손을 마주 잡음)하고 앉았으며 뒤편에는 기다란 담뱃대를 벽에 세워 놓았다. 이렇다 할 벼슬을 지내지 못한 채 향유(鄕儒)로서 독서나 청아한 취미 생활로 소일했을 주인공의 면모를 매우 잘 나타내고 있다.
특히 이 초상화는 전면에 바둑판과 바둑알을 매우 강조하여 부각시켰다. 이는 변종락이 자신의 호를 ‘바둑 노인〔碁翁〕’이라 칭하고 정자의 이름을 ‘기옹정(碁翁亭)’이라고 부를 만큼 바둑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말년에 당나라 백거이(白居易)의 ‘향산구로회(香山九老會)’ 고사를 본떠 부근의 당세 명류로 꼽히던 구로(九老)들과 날마다 기옹정에서 바둑을 두며 소일하였다 한다. 매화가 그려진 청화 백자 술병과 긴 담뱃대도 바둑을 둘 때 없어서는 안 되는 주인공의 일상이요 취미였을 것이다.
바둑판, 담뱃대, 청화백자 등의 등장은 일상의 생활모습을 재현한 가거(家居)초상의 유형으로서, 변종락의 존재감과 정체성을 투영시킨 기물로 볼 수 있다.
초상화에서 주인공의 일상성을 강조하는 것은 18세기 후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던 새로운 경향이다. 「기옹영정」에서는 그것이 더욱 정취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어 그 사이의 변모를 느끼게 해 준다. 청화 백자에 그려진 화려하고 복잡한 종속 문양과 사군자풍의 매화 그림도 19세기 중반경의 시대감각을 잘 보여 준다.
흔히 비단에 그리는 것이 통례였던 초상화를 종이에 그린 것이나, 바둑판이 심한 역원근법(逆遠近法)으로 묘사된 것 그리고 얼굴이나 도포에 명암 표현이 깊지 않아 다소 평면적으로 처리된 것 등은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은 지방 화가가 그렸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