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백증 초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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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경공 유백증 영정
충경공 유백증 영정
회화
유물
문화재
조선 중기의 문신 유백증(兪伯曾, 1587∼1646)의 초상화.
이칭
이칭
충경공유백증영정
시도지정문화재
지정 명칭
유백증 초상(兪伯曾 肖像)
지정기관
충청북도
종목
충청북도 시도유형문화유산(1995년 06월 30일 지정)
소재지
충북 충주시 노은면 둔터로 88-21 (가신리)
목차
정의
조선 중기의 문신 유백증(兪伯曾, 1587∼1646)의 초상화.
구성 및 형식

1995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세로 174㎝, 가로 95㎝. 비단 바탕에 채색. 유백증의 초상화는 얼굴에 주름과 흰 수염이 없는 젊은 용모인 점이나 도상과 화법이 17세기 초 공신도상의 전형과 유사한 점이 많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37세인 1623년에 정사공신(靖死功臣)에 녹훈된 뒤 그려진 공신도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유백증은 성품이 강직하고 충직하여 직언을 서슴지 않음으로써 관계에서 많은 화를 당하였다. 초상화도 전체적으로 단순하고 강경한 미감이 두드러져 주인공의 내면세계를 매우 효과적으로 전해 주고 있다. 현재 조선식 족자 표구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정사공신 녹권도 원형대로 보존된 채 함께 소장되어 있다.

내용

도상은 단령(團領 : 깃을 둥글게 만든 공복)과 사모관대(紗帽冠帶)를 정장한 뒤 바닥에 채전(彩氈 : 카펫)을 깔고 교의자(交椅子)에 반우향으로 앉아서 공수(拱手 : 두 손을 마주잡음)한 조선 중기 공신도상의 전형적인 모습과 같다. 단령 옆 자락을 크게 터서 넓게 벌린 뒤 이를 곧은 사선으로 단순화시켜 표현한 것이나, 단령 뒷자락이 교의자 위로 접혀 올라온 것을 삼각형 형태의 기하학적인 감각으로 묘사한 방식도 같다.

단령의 옷주름을 짙고 강한 먹선으로 단순화시켜 묘사함으로써 신체를 매우 평면적으로 처리하였다. 그 뒤 먹을 섞은 어두운 자주색을 전면에 걸쳐 동일하게 담채(淡彩)하고 옷주름 사이에도 전혀 명암을 표현하지 않았다. 그래서 신체의 평면성을 더욱 강조한 표현도 전형적인 양식과 같다. 그러나 17세기의 통상적인 예와 달리 단령의 운문(雲文 : 구름무늬)은 생략하고 표현하지 않아 다소 소략한 묘법을 보여 준다.

사모를 농묵(濃墨)으로 짙게 칠하고 위로 솟은 모정(帽頂)을 약간 엷게 칠한 것은 일반적인 예와 같다. 그러나 양 날개의 외곽선을 짙은 농묵 필선으로 그린 다음 내부의 문양을 완전히 생략한 채 중묵으로만 우려서 표현했다. 일반적으로 모란문이나 운문을 묘사했던 것과 다른 소략한 표현이다.

얼굴은 배채법을 사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농담의 차이가 거의 없는 붉은색 필선으로 윤곽선과 주름선을 잡았다. 그리고 붉은 빛이 많이 도는 살색을 가볍게 담채하였다. 그 뒤 광대뼈로 인해 도드라진 부분과 눈 주변, 코 밑, 귓속 등의 오목한 부분까지 모두 적색으로 우렸다. 즉, 요철의 차이를 전혀 구별하지 않고 동일한 기법으로 표현하는 관념적 음영법을 사용했다.

눈은 눈동자의 동그란 외곽선을 가는 농묵 필선으로 그리고 그 내부를 중묵으로 우린 다음 농묵의 점을 찍어 동공을 표현했다. 위 눈꺼풀 선은 먹선으로 그어 강조한 뒤 가는 먹선으로 상하 속눈썹을 일일이 묘사했다. 콧구멍은 먹선으로 윤곽선을 강조하여 깊은 명암의 차이를 표현했다. 수염은 농담과 굵기의 차이가 거의 없는 농묵 세선으로 묘사한 뒤 담묵(淡墨)으로 약간 무겁게 우렸다. 목 부분은 중의(中衣)에 칠한 흰색이 일어나며 혼색되어 다소 얼룩이 생겼다.

흉배는 적색 뇌문(雷文 : 번개무늬) 바탕 위에 모란과 구름을 배경으로 백한(白鷳) 두 마리를 그린 운한(雲鷳) 흉배이다. 관대는 삽금대(鈒金帶 :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금띠)인데, 흉배와 관대에는 금분과 은분을 사용하여 장식적 효과를 강조했다.

교의자의 손잡이는 농묵의 먹선으로 윤곽선을 그리고 갈색 진채(眞彩 : 진하고 강하게 쓰는 채색)를 칠했다. 통상의 예와 달리 오른쪽 손잡이는 생략한 채 그리지 않았다. 교의자의 받침대도 먹선으로 윤곽선을 그리고 은분을 칠한 다음 장식 문양을 먹선으로 선묘(線描)했다. 은분은 많이 박락된 상태이다.

의답(椅踏)은 먹선으로 기본 형태를 선묘하였다. 그리고 갈색을 담채한 뒤 볼록하게 나온 부분과 오목하게 들어간 부분을 가리지 않고 모두 담묵으로 우려서 요철의 차이를 관념적으로 표현했다. 윗면은 네 가장자리에 청색 진채(眞彩)로 색 띠를 두른 뒤 그 내부를 황색으로 담채하고 담묵 필선으로 돗자리의 올을 일일이 묘사했다.

채전은 가는 먹선으로 문양의 외곽을 간략히 구획한 뒤 각각의 기본색을 담채로 칠하였다. 그 위에 다시 석채(石彩 : 진채)를 두텁게 점묘하여 강한 장식적 효과와 함께 직조로 인한 질감까지 표현했다.

참고문헌

『한국의 초상화 : 역사 속의 인물과 조우하다』(문화재청 편, 눌와, 2007)
『한국의 초상화』(조선미, 열화당,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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