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행주(幸州). 초명은 기충헌(奇忠獻) 또는 기내헌(奇乃獻), 자는 헌보(獻甫). 응교 기준(奇遵)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한성부윤(漢城府尹) 기대항(奇大恒)이고, 아버지는 기응세(奇應世)이며, 어머니는 우찬성(右贊成) 임백령(林百齡)의 딸이다. 형이 영의정을 지낸 기자헌(奇自獻)이다.
현감으로 있다가 1605년(선조 38)에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608년에 승문원박사(承文院博士)가 되고, 광해군 때는 공조좌랑·군기시정(軍器寺正)·세자시강원문학(世子侍講院文學)·장령(掌令)·안악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1617년(광해군 9)에 형인 영의정 기자헌이 광해군의 인목대비(仁穆大妃) 폐비론에 반대하여 유배될 때 형과 함께 관직을 삭탈당하고 유배되었다. 그 뒤 진사 이건원(李乾元)이 서궁폐출(西宮廢黜)에 반대한 이각(李覺)과 함께 처형하자고 주장하여 수차에 걸쳐 국문을 받았으나 뚜렷한 실증이 없어 방면되었다.
그러나 인조반정 이후 오히려 광해군이 영창대군을 제거할 때 동조하였다는 죄목으로 국문을 받았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난군과 내응하였다는 혐의로 온 집안이 추국을 받아 끝까지 불복하다가 형이 먼저 죽고, 그 뒤 생원 임강(林茳)과 더불어 장(杖)을 맞다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