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영광(靈光). 자는 언명(彦明), 호는 월봉(月峰). 평강현감 김경의(金敬義)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조참판 김필(金㻶)이고, 아버지는 헌납 김괴(金塊)이며, 어머니는 참의 우효신(禹孝新)의 딸이다.
조광조(趙光祖)의 문인으로 어려서부터 영특하여 조광조로부터 총애를 받았다.
1519년(중종 14) 사마양시에 합격하였으나 이해 기묘사화로 스승 조광조가 화를 당하자 벼슬을 포기하고 고향인 장흥(長興)으로 돌아왔다. 그 뒤 1521년(중종 16) 이문습독관(吏文習讀官)으로 있으면서 안처겸(安處謙)의 옥사에 연루되어 해남(海南)에 유배되었다.
당시 기묘사화로 조정은 사림들을 몰아내고 오로지 남곤(南袞)·심정(沈貞) 등이 정권을 장악하였다. 이에 불만을 가진 안처겸은 시산부정(詩山副正) 정숙(正叔)·권전(權磌) 등과 함께 간신들을 제거하여 국세를 바로잡아 볼 것을 논의하였다.
이때 송사련(宋祀連) 등이 이를 듣고 밀고하여 일은 사전에 발각되고 말았다. 송사련의 밀고 문서에 습독관인 김광원도 들어 있었으나 당시 조광조를 구하려하였던 정광필(鄭光弼)의 두호로 해남(海南)에 유배되는 것으로 그쳤다.
그 뒤 1533년 유배에서 풀려나 벼슬을 그만두고 장흥으로 돌아와 후진교육에 힘썼다. 사후 이조참의에 이어 이조참판에 각각 추증되었다. 장흥의 예양서원(汭陽書院)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