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낙철(金洛喆, 1858~1917)은 1858년에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부안에서 태어났다. 호는 용암(龍菴)이며, 자는 여중(汝仲)이다. 그의 집안은 부안에서 유력한 지주 집안이었다. 어려서 유학(儒學)을 공부하였으나, 33세 되던 해인 1890년에 동생들과 함께 동학에 입도(入道)하였다.
1891년에는 충청도 공주에 머물고 있던 동학의 2대 교주 최시형을 찾아가 직접 지도를 받았다. 1893년에는 서울에서 있었던 복합상소운동에 부안의 동학교도들과 함께 참여하였다. 1894년 4월에 전봉준이 중심이 된 제1차 동학운동이 일어나자 김낙철도 부안에서 봉기(蜂起)하였다.
김낙철은 수백 명의 도인을 이끌고 부안 읍내로 들어가 도소(都所)를 설치하였고, 동생 김낙봉으로 하여금 줄포(茁浦)에도 도소를 설치토록 하였다. 그는 전봉준의 농민군과는 독립적인 행동을 취하면서 부안현 관내를 장악하고 치안을 유지하였을 뿐 타 지역으로 이동하거나 전봉준의 농민군에 합류하지 않았다.
1894년 9월에 일어난 제2차 동학운동 과정에서는 전봉준과 함께 연합하여 활동하였다. 이후 김낙철은 1894년 12월에 이웃마을 사람의 고발에 의해 체포되어 나주로 압송되었다. 이때 나주 수성군과 관속들에게 혹독한 구타를 당하였다. 김낙철 형제는 이듬해 3월에 석방되었다. 이후 최시형을 도와 동학교단 재건 운동을 전개하였고, 1905년 이후에는 천도교 활동에도 참여하였다.
김낙철의 회고록으로 『김낙철역사(金洛喆歷史)』가 있으며, 동생 김낙봉의 회고록인 『김낙봉이력(金洛鳳履歷)』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