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화평(化平). 아들은 찬성사(贊成事)를 지낸 김지숙(金之淑)이다.
1269년(원종 10)에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가 되었고, 1271년 정월에는 추밀원사(樞密院使)로서 국혼을 청원하는 표문(表文)을 올리기 위하여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같은 해 3월에 귀국하였다.
그 뒤 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를 거쳐, 1274년(충렬왕 즉위년)에는 참지정사(參知政事)가 되었다. 김련(金鍊)은 일에 임해서 과단성은 없었으나, 풍의(風儀)가 아름답고 행동이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으므로 장자(長者)라 칭송받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