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기는 해방 이후 「동학과 동학란」, 「동방문화교류사논고」, 「고려시대사」 등을 저술한 역사학자이다. 1901년(고종 38)에 태어나 1977년에 사망하였다. 1931년에 일본 와세다대학을 졸업하고 동양사의 연구에 주력하여 한국 동양사의 기초를 다졌다. 1934년 진단학회를 조직하여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밝히는 데 노력하였다. 학술원 회원과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문화유산위원회, 독립기념사업위원회, 민족문화추진위원회 등에서 활동하였다. 서울특별시공로표창(1961), 학술원상(1962), 문화훈장 대한민국장(1962) 등을 수상하였다.
아호는 동빈(東濱).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김제 출신. 아버지는 참서관 김연익(金然翊)으로, 그의 둘째 아들이다. 최보열(崔輔烈) · 최병심(崔秉心) 문하에서 한문을 수학하였다.
1926년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1년 일본 와세다[早稻田]대학 사학과(동양사 전공)를 졸업하였다. 귀국하여 1945년까지 중앙고등보통학교 교유(敎諭)와 이화여자전문학교 강사를 지내고, 1945년부터 1962년 군사 정권의 임시 특례법에 의하여 정년 퇴직하기까지 경성대학교 법문학부와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1947년에서 1953년까지 서울대학교 박물관장을 지냈으며, 1952년에서 1957년까지 문리과대학 학장을 지냈다. 그 뒤 동아대학교 초빙 교수로 재직하였다.
이처럼 40여 년에 걸쳐 교육계에 있으면서 많은 인재를 육성하였다. 특히 동양사의 연구에 주력하여 한국에 있어서의 동양 사학의 기초를 세운 공은 매우 크며, 나아가서 학계와 문화계 일반에 있어서의 공헌도 많다. 그리고 1934년 동료들과 같이 진단학회를 조직하여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밝히는데 노력하였다. 이후에도 서지학회(1945) · 중국학회(1962) · 백산학회(1966) · 한국고고학협회(1967) 등을 조직하거나 혹은 초대 회장을 지냈다.
대표적인 저서와 논문은 다음과 같다. 먼저 저서로는 『동학과 동학란』(1947) · 『중국고대사강요(中國古代史綱要)』(1948) · 『동방문화교류사논고』(1948) · 『고려시대사』(1961) · 『역주 고려사』(11책, 감수) · 『동방문화사논고』(1976) 등이 있다. 논문으로는 「갈문왕고(葛文王考)」 · 「한예맥이동고(韓濊貊移動考)」 · 「동이(東夷)와 회이(淮夷) · 서융(徐戎)에 대하여」 · 「독서당고(讀書堂考)」 · 「태한전설(太旱傳說)의 유래에 대하여」 등을 비롯하여 많은 논문이 있고, 또한 많은 해제 · 전기 · 서문 등과 비문 · 명문(銘文)을 남겼다.
김상기의 논저를 보면 여러 가지 유의되는 점이 있다. 무엇보다도 시야가 매우 넓다는 점이다. 동양사에 주력하였으나 한국사를 도외시하며 중국사에 치중한 것이 아니고, 한국사를 거시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그 폭을 중국사에까지 넓힌 것이라고 하겠다. 「한예맥이동고」나 동이와 회이 · 서융에 관한 연구는 한민족의 기원을 거시적으로 검토한 것이다. 그리하여 많은 중국의 고대문헌과 사료를 활용하였으며, 이것은 한문 · 한학에 관한 깊은 온축(蘊蓄)이 토대가 된 것이다. 그러면서 사학자로서의 문헌 비판과 철저한 사료 고증이 논리 전개에 수반되어 있다. 따라서 논리의 비약이나 아전인수의 해석 등을 찾아보기 어렵다.
한문으로 찬수(撰修)된 비문 · 명문에서 신학문과 구학문을 겸비한 학자임을 짐작할 수 있다. 또 을지문덕(乙支文德) · 발해태조(渤海太祖) · 장보고(張保皐) · 강감찬(姜邯贊) · 정몽주(鄭夢周) · 김유신(金庾信) · 성삼문(成三問) · 윤관(尹瓘) 등 위인에 관한 논문과 전기에는 김상기의 의연한 애국심도 표현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