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경징(景徵), 호는 동촌(東村). 김여명(金汝明)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군수 김사원(金士元)이고, 아버지는 현감 김급(金汲)이며, 어머니는 임보신(任輔臣)의 딸이다. 김낙(金洛)에게 입양되었다. 호조판서 김신국(金藎國)의 아우이다.
1613년(광해군 5)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이듬해 홍문관에 들어갔으며, 1615년에는 주서(注書)에 올랐다. 1618년에 병조좌랑이 되었다. 그 뒤 직강(直講)·수찬(修撰)·부교리(副校理)·이조좌랑·정언(正言)을 지냈다.
1621년 전라도선유어사(全羅道宣諭御史)가 되었으나 근무가 태만하고 직무에 실책이 많다는 대간의 탄핵으로 파직되었다. 1625년에 우부승지에 오르고 호조판서를 지냈으며, 이듬해 우승지·참찬관에 올랐다.
1630년(인조 8)에는 도승지로 승진하였으며, 1632년 동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640년에 대사성이 되고 이어 참판·대사간을 지냈으며, 1646년 제학(提學)에 올랐다.
그 뒤 대사성이 되었고 1649년(효종 즉위년) 판의금부사를 지낸 뒤 벼슬에서 물러났다. 형의 후광으로 정계에 진출하였으나 큰 공적을 남기지는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