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종 때 문하시중을 지낸 해양후(海陽侯) 김준(金俊)의 후처 소생이다.
1261년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 김지대(金之岱)가 지공거(知貢擧)로 있을 때 과거에 응시하였다.
이때 등수를 정하기 어려워 의논 끝에 을과 4등으로 정하였는데, 왕이 3등으로 선정하고 합문지후(閤門祗候)에 제수하였다. 뒤에 우부승선(右副承宣)에까지 승진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언제나 김준과 함께 모의하면서 김애를 그의 후사로 삼기 위해 노력하였다.
1268년 국자좨주(國子祭酒)로서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어 지공거인 문하시랑(門下侍郎) 유경(柳璥)과 함께 진사과에 33인, 명경과에 2인, 은사(恩賜)에 8인의 합격자를 선발하였다.
본래 성격이 탐욕스러워 크고 화려한 저택을 짓기 위하여 주변의 인가를 많이 헐어내는 등 민폐를 크게 끼쳤다. 1268년 김준이 임연(林衍)에게 피살되면서 가족과 함께 잡혀 참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