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유(子裕), 호는 필운옹(弼雲翁). 아버지는 관찰사 김시걸(金時傑)이다. 김창흡(金昌翕)의 문인이다.
음보(蔭補)로 현감이 되었다가 1723년(경종 3) 소론 김일경(金一鏡) 등에 의해 노론 김창집(金昌集)의 일당이라 하여 파직, 기장현(機張縣)에 유배되었다.
그 뒤 1725년 영조가 즉위하자 풀려나 우사어(右司禦)로 다시 기용되고, 이어서 임천군수(林川郡守)를 거쳐 첨지중추부사를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시문을 모은 『필운유고(弼雲遺稿)』가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