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무안(務安). 자는 징지(澄之). 할아버지는 형조좌랑 박규(朴䅅)이고, 아버지는 박창하(朴昌夏)이며, 어머니는 현감 이억(李繶)의 딸이다.
1681년(숙종 7)에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85년 형조좌랑이 되고 1687년 만경현령(萬頃縣令)을 역임하였으며, 이어 1690년에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을 거쳐, 이듬해 예조좌랑이 되었다.
그 뒤 1692년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을 역임한 뒤 1717년 기로소에 들었으며 이어 공조참의가 되고, 1727년(영조 3)에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거쳐 이듬해는 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에 이르렀다. 청렴하기로 이름이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