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구명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순천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기서(箕瑞)
우암(寓菴)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61년(현종 2)
사망 연도
1719년(숙종 45)
본관
영양(英陽)
출생지
영해(寧海: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
주요 관직
순천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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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순천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기서(箕瑞), 호는 우암(寓菴). 경상북도 영해 출신. 할아버지는 남길(南佶)이며, 아버지는 종사랑 남상주(南尙周)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87년(숙종 13) 사마시에 합격하고 1693년(숙종 19)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그러나 벼슬에 뜻이 없어 고향에서 10여년간 은거하다가 형 남노명(南老明)의 강력한 권유로 전적을 지내고, 1712년(숙종 38)에 제주판관으로 부임, 흉년에 도민구제에 공을 세웠다.

뒤에 순천부사(順天府使)를 지내고, 다시 귀향하여 풍류를 즐기며 말년을 보냈다. 순천에 동비(銅碑)가 세워지고 제주의 죽림사(竹林祠)에 제향되었다. 저서에 『우암집』이 있다.

참고문헌

『숙종실록(肅宗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옥천집(玉川集)』
『한국계항보(韓國系行譜)』(조용승,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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