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 ()

운암문집
운암문집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예조정랑, 춘추관기주관, 무안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지원(志遠)
운암(雲巖)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64년(명종 19)
사망 연도
1636년(인조 14)
본관
해평(海平)
출생지
성주(星州)
주요 관직
춘추관기주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예조정랑, 춘추관기주관, 무안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지원(志遠), 호는 운암(雲巖). 성주 출신. 김계희(金季熙)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현감 김경(金璟)이고, 아버지는 호조정랑 김응곤(金應袞)이며, 어머니는 안강노씨(安康盧氏)로 노홍도(盧弘道)의 딸이다. 송원기(宋遠器)와 정구(鄭逑)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이정구(李廷龜)·권분(權肦) 등과 교유가 두터웠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05년(선조 38)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성주 사림들과 함께 광해군의 폭정을 비난하다가 금고(禁錮)에 처해져 벼슬길을 단념하고 고향에서 면학에 힘썼다.

1623년 인조반정 뒤 인조의 배려로 성주 별시를 열어 이 지역 사림들을 위로하였는데, 여탁(呂悼)과 함께 선발되어 전시(殿試)에 직부(直赴)되어 1624년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전적(典籍)·공조좌랑·병조좌랑·예조정랑·춘추관기주관(春秋館記事館) 등을 거쳐 무안현감(務安縣監)이 되어 유점(鍮店)의 폐단을 개혁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1603년(인조 8)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갈 때는 거문고 하나만을 가지고 갈 정도로 청렴하였다고 한다.

한편, 김우옹(金宇顒)이 『속자치통감강목(續資治通鑑綱目)』을 편찬할 때 그 일에 참여하였다. 저서로는 『운암문집(雲巖文集)』 4권이 있다.

참고문헌

『인조실록(仁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운암문집(雲巖文集)』
『계곡집(谿谷集)』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
관련 미디어 (2)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