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책. 필사본. 권두에 정인보(鄭寅普)의 서문이 있다. 1∼5책에 차(箚) 40편, 주(奏) 16편, 의(儀) 4편, 서(序) 11편, 서후(書後) 5편, 명 2편, 찬 1편, 설 2편, 제문 32편, 전(箋) 3편, 표 5편, 묘지 2편, 광지(壙誌) 1편, 묘지명 2편, 천표(阡表) 1편, 비 1편, 묘갈명 5편, 소 29편, 회환수신사별단(回還修信使別單) 1편, 가장 1편, 행장 1편, 시장(諡狀) 3편, 6∼8책에 「종정일기(從政日記)」가 수록되어 있다.
국민대학교 도서관과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책의 표제와 「회환수신사별단」은 정인보가 쓴 것이다. 주 가운데 「진면주(秦勉奏)」의 별지는 외국의 차관을 상환하기 위한 대책을 상주한 내용이다.
소는 대부분 사직 상소인데, 특히 일본으로부터 들여 온 황준헌(黃遵憲)의 『조선책략(朝鮮策略)』에 의해 발생한 반대상소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밝히고, 책임을 지고 사직할 것을 청한 내용이 있다. 당시 위정척사를 주장하던 유생들의 움직임과 아울러 개화의 실상을 엿볼 수 있게 한다.
「회환수신사별단」은 1880년(고종 17)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보고서로, 당시의 경로와 보고 겪은 내용, 그리고 관세의 개정 및 주한일본공관에 관한 문제들을 기술하였다. 또한 러시아제국이 투먼강(圖們江)에 군함을 배치한 사실, 일본의 자연적인 조건과 국내 상황 등을 기록하였다.
「종정일기」 중 6책은 1884년 10월 2일에서 1888년 4월 19일까지의 일기로 갑신정변의 뒷수습에 관한 사실을 비롯하여 흥선대원군의 환국과 위안스카이(袁世凱)의 입국 등에 관한 내용이 들어있다. 그리고 부국강병에 관한 대책 및 군제에 대하여 왕에게 올린 의견과 문답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7책은 1885년 5월 1일에서 1890년 말까지 기록된 일기로 재정·경제·농사 등의 정책에 관해 왕과 의견을 나눈 내용과 특히 1889년 수원에서 일어난 민심동요의 전말 등이 기록되어 있다.
마지막 8책은 1891년 1월 1일에서 1894년 7월 25일까지의 일기로서 1893년 동학교도들의 동태 및 북도지방의 대일곡물수출금지(防穀)에 따른 상황보고와 대책, 김옥균(金玉均)의 시신을 검사한 사실 등 갑오경장을 전후한 격동하는 개화기의 중요 국내외 사항들을 기록하였다.
여기에 「이정학재일록(以政學齋日錄)」 2책, 「수신사일기(修信使日記)」 1책, 「금영내찰(錦營來札)」 1첩, 「화방문서(花房文書)」 1책 등을 고려대학교 도서관에서 편집, 합본하여 1976년 간행하였다.
「이정학재일록」은 「종정일기」의 앞부분에 해당하는 것으로, 1867년 2월 23일에서 1884년 10월 1일까지의 일을 적은 것이다. 「수신사일기」는 1880년 5월 28일 수신사로 일본에 파견되었다가, 귀국할 때까지의 내용을 왕에게 문답식으로 복명한 기록이다.
「금영내찰」은 충청도 관찰사에게 보낸 서한으로서 1894년에 일어난 동학란에 관한 내용이다. 「화방문서」는 인천의 개항문제에 관해 1881년부터 1882년까지 담판을 벌였던 일본 변리공사 하나부사(花房義質)가 교섭 경위를 일본 정부에 보고한 문서로 일본측에서 본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