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0년(태종 10)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부(府)의 서쪽인 대곡산(大谷山) 기슭에 창건하였다. 향사(享祀) 때마다 호랑이의 침해가 있는 까닭에 1428년 부의 동쪽 덕음봉(德蔭峰) 밑으로 이건하였다가, 홍수 때 길이 막히는 일이 많아 1443년에 다시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그 뒤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복원되었다. 1599년에 진사 유인옥(柳仁沃)을 중심으로 한 지방유림이 대성전과 동무(東廡) · 서무(西廡)를 중건하였고, 1609년 감사 윤안성(尹安性)과 부사 성안의(成安義)의 찬조로 명륜당을 중건하였다.
1748년에 진사 한동섭(韓東攝)이 동재 · 서재를 중수하는 등 여러 차례 보수하여오다가, 1876년에 화재로 명륜당과 서적이 유실되었으며, 그 뒤 부사 오달선(吳達善) 등 유림이 협력하여 명륜당을 중건하였다. 1892년에는 부사 민종렬(閔鍾烈)이 대성전 등을 수리하는 등 계속적인 보수를 하여왔으며, 1982년에는 국가보조금으로 대대적인 중수를 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대성전과 동무(3칸) · 서무(3칸) · 명륜당(5칸) · 동재(5칸) · 서재(3칸) · 신문(神門, 3칸) · 고직사(庫直舍, 6칸) · 진강루(振綱樓, 6칸) · 외문(外門, 3칸) 등이 있다. 1971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대성전은 팔작지붕에 겹처마로 되어 있고 기둥은 두리기둥을 사용하였다. 건축형태는 앞쪽에 강학 공간인 명륜당을, 뒤쪽의 높은 곳에 대성전을 두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형식이다.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 및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정원 70인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 · 가을에 석전을 봉행하며 초하루 · 보름에 분향하고 있다.
유림들이 위성계(衛聖稧)를 조직하여 관리하고 있으며, 소장전적은 253종 821책으로 전북 지역 향교 중 가장 많은 서적을 보관하고 있다.이 중 필사본인 《향안 鄕案》 · 《완의 完議》 · 《청금록 靑衿錄》 및 절목류들은 지방사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