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말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河東 雙磎寺 眞鑑禪師塔碑)에 남장사에 대한 가장 오래 된 기록이 남아 있다. 남장사는 830년(흥덕왕 5) 진감국사(眞鑑國師) 혜소(慧昭, 774~850)가 당나라에서 귀국한 뒤 처음으로 머문 사찰로, 당시 절의 이름은 장백사(長栢寺)였다고 한다. 이 절이 창건된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1186년(명종 16) 각원(覺圓)이 지금의 터로 절을 옮겨 짓고 남장사(南長寺)라 하였다. 1203년(신종 6)에 금당(金堂)을 지었으며, 1473년(성종 4)에 절을 고쳤다. 1621년(광해군 13)에 명해(明海)가 영산전(靈山殿)을 건축했으며, 1635년(인조 13)에 정수(正修)가 금당 등을 다시 손질했다. 1704년(숙종 30) 진영각(眞影閣)을 신축하였으며, 1709년에 민세(旻世)가 영산전을 고쳐 지었다. 1761년(영조 37) 상로전(上爐殿)을 신축하였다가 1807년(순조 7) 다시 정리했다. 1856년(철종 7) 진허(鎭虛)가 극락전과 조사각을 고쳤고, 1867년(고종 4)에 응월(應月)이 영산전을 수리했다. 1889년에 보광전(寶光殿)을 만들었고, 1903년에 함월(涵月)이 칠성각을 건립하였으며, 1907년에 덕암(德巖)이 염불당(念佛堂)을 건립하였다. 이 절은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直指寺)의 말사이다.
이 절에는 극락보전을 비롯하여 영산전 · 보광전 · 금륜전(金輪殿) · 향로전 · 진영각 · 강당 · 일주문 · 불이문 등이 있으며, 부속 암자로는 관음선원(觀音禪院)과 중고암(中高庵)이 있다.
1978년 7월, 영산전 후불탱화에서 '주불(主佛)과 16나한상을 조성할 때 석가모니의 진신사리 4과와 칠보류들을 넣었다'는 기록이 발견되었으며, 사리 4과 및 칠보류도 함께 나왔다.
주요 유물 중 보물로는 보광전 목각 아미타여래 설법상, 관음선원의 목조 관음보살 좌상과 관음선원 목각 아미타여래 설법상, 영산회괘불도 및 복장유물, 감로왕도, 철조 비로자나불 좌상, 목조 아미타여래삼존 좌상이 있다. 남장사 일주문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이다. 이밖에 남장사에는 경상북도 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석장승이 있다.
응향각 안에는 12폭의 조사(祖師) 진영(眞影)이 있고, 극락보전에는 업경대(業鏡臺) 2점이 있다. 12폭의 진영은 인월대인(印月大仁) · 상남영찰(尙南永察) · 백봉신엄(白峰信嚴) · 백설찬수(柏雪贊修) · 만성원화(晩惺元嘩) · 진감국사(眞鑑國師) · 달마(達磨) · 나옹(懶翁) · 휴정(休靜) · 환적(幻寂) · 소영(昭影) · 유정(惟政)을 그린 것이며, 달마의 영정은 1812년(순조 12)에 조성된 것이다. 경내에 취진당(醉眞堂) · 소영당(昭影堂) · 환옹(喚翁) · 쌍원당(雙圓堂)의 승탑이 있다.
남장사에서 찍은 목판본 저서로는 조종경(趙宗敬)의 『독암유고(獨庵遺稿)』 1권과 부록 1권, 이춘원(李春元)의 『구원집(九畹集)』 5권 등이 있다. 이 저서들은 모두 남장사에서 새로 판을 찍은 것이다.
남장사는 조선 후기에 여러 차례 고치거나 다시 지었으며, 불화를 제작하는 등 다양한 불사를 진행한 곳이다. 당시 남장사의 위상은 응향각에 봉안된 다수의 조사 진영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보았을 때, 남장사에 있는 불전과 여러 불교 관련 유물들은 조선시대 불교 문화를 연구하기 위한 자료로서 그 학술적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