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장우(章宇), 호는 고암(孤巖). 할아버지는 남융달(南隆達)이고, 아버지는 남잡(南磼)이며, 어머니는 권종선(權宗善)의 딸이다.
1630년(인조 8) 진사가 되고 1646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지평·장령 등을 거쳐 1675년(숙종 1) 집의·대사간으로 승진하고 이듬해부터 여러 차례 승지를 역임한 뒤 1680년 호조참의가 되었다. 예론에 밝아, 민신(閔愼)이 병든 아버지를 대신하여 할아버지의 복을 입으려는 것을 논란 끝에 막은 일이 있다.
또, 예송(禮訟)에 깊이 참여하여 남인의 입장을 앞장서 천명하였다. 특히, 1674년 숙종이 즉위하자 장령으로 재직하면서 가장 먼저 송시열(宋時烈) 유배와 송준길(宋浚吉)의 관작추탈을 주장하였다. 그 뒤 숙종의 깊은 신임을 받았으나 1680년 경신대출척으로 호조참의 재직 중 벼슬을 박탈당하였다.